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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 절명시의 바른 이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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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매천황현선생기념사업회
댓글 0건 조회 250회 작성일 24-08-0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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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매천도서관 앞에 매천 기념비가 서 있고, 그 비에는 망국의 슬픈 현실을 목도한 지식인로서의 소명을 통감하여 죽음을 앞에 두고 지은 이른바 '절명시(絶命詩)' 4수가 해석되어 새겨져 있다. 그런데 그 해석이 매천 선생의 당시 심정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발견된다. 애국지사의 당시 절절한 회한과 안타까운 심정을 후손들이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근에 복원한 구안실에 새긴 시와 광양 생가에 걸려있는 절명시를 같이 대비하여 감상해 보고자 한다.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표로 정리해 본다.


제 1수

 원문

 구례 매천시비

 구안실 시비

 광양 생가 

 재 감상 

 亂離袞到白頭年(난리곤도백두년)

 난리를 겪다가 흰머리의 

 나이가 되었구나

 난리 속에 어느덧 백발의 나이

 되었구나

 난리를 겪어나온 허여센 나이 

 난리 속에 어느덧 백발나이 되었구나 

 幾合捐生却末然(기합연생각미연)

 몇 번의 생을 버리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몇 번이고 죽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네

 죽으려다 못 이룸 몇 번이더뇨

 몇 번이나 죽어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네

 今日眞成無可奈(금일진성무가내)

 오늘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니

 오늘 참으로 어쩌지 못할 상황 되니

 오늘은 정말로 어쩔 수 없으니

 오늘에야 참으로 어쩔 수 없게 되었으니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가물거리는 촛불만 창천에

 비치도다.

 바람 앞 촛불 밝게 하늘을 비추네

 바람 앞의 촛불이 하늘 비추네 

 가물거리는 촛불 저 하늘 환히 비추네 


첫째 구절의 '곤滾'자는 물이 빠르게 흐르는 모습을 뜻한다. 따라서 '어느덧' 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 둘째 구절의 '기합연생幾合捐生'은 "의리상 몇 번의 죽어야 할 상황을 만났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뒤의 '각미연却末然'은 그러나 "그때마다〔〕죽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몇 번 죽으려다 죽지 못했다는 표현으로는 의미 전달이 부족하다. 마지막 구절의 '풍촉風燭'은 죽음을 앞에 둔 자신의 가냘픈 심사를 "가물거리는 촛불"로, 그러나 자신의 충심忠心을 하늘만이 알아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앞의'휘휘輝輝'를 '조창천照蒼天'과 연결하여 "저 하늘 환히 비추네"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풍촉휘휘風燭輝輝'를 한시漢詩의 운률韻律을 맞추기 위해 '휘휘풍촉輝輝風燭'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제 2수

 원문

 구례 매천시비 

 구안실 시비 

 광양 생가 

 재 감상 

 妖氛晻翳帝星移(요분엄예제성이)

 요사스런 기운에 가리어 임금

 별자리 옮기니

 요기가 자욱하여 황제의 별

 옮겨가니

 나라가 망하자 궂은 기운 덮여

 요사한 기운 가리워 황제 별자리

 옮기니

 九闕沉沉晝漏遲(구궐침침주루지)

 구중궁궐은 침침하여 햇살도

 더디 드는 도다.

 침침한 궁궐에는 낮이 더디 흐르네

 대궐의 한 낮이 어둑하구나

 구중궁궐은 적막하고 시간조차

 멈추었네

 詔勅從今無復有(조칙종금무부유)

 조칙은 이제 다시 있을 수

 없으니

 조칙은 앞으로 더 이상 없으리니 

 조칙은 이번으로 마지막이라 

 황제조칙 이제는 다시 없을 터 

 琳琅一紙淚千絲(림랑일지누천사)

 구슬같은 눈물이 종이 올을

 모두 적시도다.

 종이 한 장 채우는데 천 줄기

 눈물이라  

 한 조각 조서에 천가닥 눈물 

 종이 한 장 쓰는 시에 천 줄기


첫째 구절의 '제성帝星'은 당시 우리나라가 중국에서 독립하여 '황제'라 했던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셋째 구절의 '조칙詔勅'도 황제의 명령을 상징한다. 둘째 구절의 '침침沉沉'은 그대로 '침침'으로 표현하는 것은 의미 전달이 안 된다. "적막하다"는 표현으로 바꾸어 亡國의 쓸쓸함을 드러내야 하고, '주루지晝漏遲'의 '주루晝漏'는 시간을 의미하니 "햇살도 더디 드는 도다" 또는 '낮 시간이 더디 흐른다.'는 오류이다. '지遲'는 '더디다'의 의미지만, 결국 "멈추었다"의 완곡한 표현이다. 그래야, "모든 것이 끝나버린 절박감을 나타내는 마음의 표현"임을 알 수가 있다. 마지막 구절의 '임랑琳琅'은 '문장'이나 '시詩'를 표현하는 용어이고, "누천사淚千絲"는 "눈물 천줄기"라는 뜻이다. 나라가 망하여 다시는 황제가 내리는 조칙을 볼 수 없다는 슬픔에, "한 장의 종이에 시를 쓰는데도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제 3수

 원문

 구례 매천시비  

 구안실 시비 

 광양 생가 

 재 감상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도 갯가에서 슬피 우는데

 금수도 슬피울고 산하도 찡그리니

 짐승도 슬피울고 강산도 시름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나라는 이미 사라졌는가

 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해 버렸다네  

 무궁화 이세상은 가고 말았네 

 무궁화 세상은 이제

 망해버렸네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아래 책 덮고 옛일

 회상하니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회고해 보니

 책을 덮고 지난 역사 거스려 보니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돌아보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의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

 인간 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

 글을 아는 사람 구실 자못 어렵다

 인간세상 글자 아는 사람 노릇

 쉽지 않았네 


첫째 구절의"갯가에서 슬피 우는데"는 오류이다. 둘째 구절의 "사라졌는가"는 앞의 '이미已'라는 완료형 부사와 어울려 '망해 버렸네' 완료형으로 표현함이 옳다. 셋째 구절의 회천고懷千古의 '천고千古'는 단순한 "옛일"로 표현하기보다는 "지난 역사"로 표현하는 것이, 역사 속에 나오는 지식인들의 삶을 말하는 뒷 구절과 바르게 연결된다. 마지막 구절의 "인간의 안다는 것이..."는 오류이다. 즉, 지난 역사를 돌아보니 의리를 알고 실천하고자 했던 역사 속의 지식인들의 삶이 순탆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본인도 이제 그러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표현한 매우 인간적인 고뇌가 드러난 애절하고 비장한 구절이다. 식자인識字人은 "글자 몇 자 아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식인'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제 4수

 원문

 구례 매천시비 

 구안실 시비 

 광양 생가 

 재 감상 

 曾無支厦半椽功(증무지하반연공)

 내 일찍 나라를 지탱하는데

 조그만 공도 없었으니

 짧은 서까래만큼도 지탱한 공

 없었으니

 벼슬 못해 조그만 공도 없으니 

 나라를 위해서는 조그만 공도

 없었으니 

 只是成仁不是忠(지시성인불시충)

 오직 인을 이룸이요 충은

 아니로다

 살신성인 그뿐이지 충성은

 아니라네 

 이 죽음 인일망정 충이랄 수야 

 나의 도리 다한 것일 뿐

 충성은 아니로세 

 止竟僅能追尹殺(지경근농추윤곡)

 겨우 윤곡을 따를 수 있음에

 그칠 뿐

 결국 겨우 윤곡이나 따르고

 마는 것을 

 끝맺음이 겨우나 윤곡 같다니 

 자결했던 윤곡을 이제 겨우

 따를 뿐 

 當時愧不躡陳東(당시괴불섭진동)

 때를 당하 진동을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노라

 부끄럽네, 왜 그때 진동처럼

 못했던고 

 진동을 못 따름이 부끄럽구나 

 논쟁했던 진동처럼 못했던 게 

 부끄럽네 


첫째와 둘째 구절은 벼슬을 하지 않은 자신은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이 조금도 없으니 지금 죽는 것은 나라를 위한 충성이 아니라 "자신의 도리를 다한 것일 뿐"이라 번역해야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겸손한 표현이 된다. "仁을 이룸"이라고 직역하거나 "살신성인"이라고 표현할 경우 겸손함을 잃게 하는 표현이 된다. 셋째 구절의 윤곡尹殺은 송宋 나라가 몽고군 침략으로 멸망하자 자결한 사람이고, 넷째 구절의 진동陳東은 침략군과의 척화斥和를 주장하고 상소하여 논쟁했던 사람이다. 이제 겨우 윤곡처럼 자결밖에 할 도리가 없으니, 진즉이 진동처럼 국가운영의 잘못에 대하여 논쟁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부끄럽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마지막으로 표현한 것이다. 碑의 형식상 주석을 달수가 없으니 간단한 내용을 번역문 속에 "자결했던"이나, "논쟁했던"을 보충하여 대강이나마 독자가 추측해 알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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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매천선생 후손 가에 소장중인 절명시 친필본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가슴에 젖은 회포를 써내려간 노련老鍊하고 고졸古拙한 필치에서 애국지사의 늠름한 절의를 느낄 수 있다.

대월헌절필첩 '절명시'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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